지난 주에는 상처에 개인적인 면과 비 개인적인 면과 함께 상처를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로 해석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게 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오늘은 상처의 비 개인적인 면을 발견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우리 모두 다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상처의 비 개인적인 성격을 밝혀낼 수 있다. 가장 쉬운 길은 아픈 체험 하나 하나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깨닫는 것이다. 당신에게 일어난 그 어떤 일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시민 200명이 도둑을 맞았는데 당신이 마침 그 200명 가운데 한 사람 이라면, 이 일을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면, 같은 종류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최소한 열 명은 된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상처를 통속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만큼 아픔을 덜게 된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친구나 가족이 돌보지 않아 외롭게 혼자 사는 사람들 또한 무척 많음을 기억하는 것도 항상 도움이 된다. 차가운 부모한테서 사랑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지난 주에 얘기했던 매럴린이 처음이 아니며 끝도 아니다. 당신 역시 과거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최초의 인물이 아니며, 또 마지막 사람도 아니다.
상처의 비개인적인 차원을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당신에게 가해진 공격 대부분이 당신을 개인적으로 마음 상하게 하겠다는 의도 없이 실행되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메럴린의 어머니는 자식의 인생을 파괴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요인 때문에 딸을 사랑으로 돌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목적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한 결혼 이었기에 엄마의 결혼생활에는 사랑이 없었다. 남편이 정기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닌 탓에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관절염이 생겨 몸도 심하게 아팠다. 이에 더하여 남편이 딸 매럴린을 유난히 사랑한 것에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들 대부분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못살게 굴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이루어진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매우 드물다. 물론 매럴린의 어머니가 딸에게 가한 일이 절대 고의가 아니 없음이 밝혀진다고 해서 어머니의 그런 태도가 면죄될 수는 없다. 우리를 괴롭힌 행위의 비 개인적인 요소가 있을 거라는 가정이 우리가 겪은 상실과 무관심의 아픔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않는다. 다만 매럴린은 어머니가 한 일과 어머니의 죄가 아닌 것을 구별해서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의 뿌리를 알기 위해 어린 시절까지 추적해 내려간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의 매정한 행위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매럴린은 그 옛날 어머니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자기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이 너무나 커서 엄마로서 따스함을 제공할 에너지마저 다 소모된 것이었다. 그 결과 매럴린 역시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자기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매럴린이 겪은 것과 같은 일들의 보편성을 인정하지 못하면, 울화가 활동할 무대장치를 마련하는 셈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의 느낌에만 정신을 집중한 나머지 고통의 편재성이라든가 고통의 발생 빈도 등을 전부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의 불공정함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상처의 뿌리가 내리고 울화가 형성된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용서-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 중에서
지난 주에는 상처에 개인적인 면과 비 개인적인 면과 함께 상처를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로 해석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게 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오늘은 상처의 비 개인적인 면을 발견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우리 모두 다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상처의 비 개인적인 성격을 밝혀낼 수 있다. 가장 쉬운 길은 아픈 체험 하나 하나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깨닫는 것이다. 당신에게 일어난 그 어떤 일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시민 200명이 도둑을 맞았는데 당신이 마침 그 200명 가운데 한 사람 이라면, 이 일을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면, 같은 종류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최소한 열 명은 된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상처를 통속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만큼 아픔을 덜게 된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친구나 가족이 돌보지 않아 외롭게 혼자 사는 사람들 또한 무척 많음을 기억하는 것도 항상 도움이 된다. 차가운 부모한테서 사랑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지난 주에 얘기했던 매럴린이 처음이 아니며 끝도 아니다. 당신 역시 과거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최초의 인물이 아니며, 또 마지막 사람도 아니다.
상처의 비개인적인 차원을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당신에게 가해진 공격 대부분이 당신을 개인적으로 마음 상하게 하겠다는 의도 없이 실행되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메럴린의 어머니는 자식의 인생을 파괴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요인 때문에 딸을 사랑으로 돌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목적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한 결혼 이었기에 엄마의 결혼생활에는 사랑이 없었다. 남편이 정기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닌 탓에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관절염이 생겨 몸도 심하게 아팠다. 이에 더하여 남편이 딸 매럴린을 유난히 사랑한 것에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들 대부분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못살게 굴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이루어진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매우 드물다. 물론 매럴린의 어머니가 딸에게 가한 일이 절대 고의가 아니 없음이 밝혀진다고 해서 어머니의 그런 태도가 면죄될 수는 없다. 우리를 괴롭힌 행위의 비 개인적인 요소가 있을 거라는 가정이 우리가 겪은 상실과 무관심의 아픔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않는다. 다만 매럴린은 어머니가 한 일과 어머니의 죄가 아닌 것을 구별해서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의 뿌리를 알기 위해 어린 시절까지 추적해 내려간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의 매정한 행위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매럴린은 그 옛날 어머니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자기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이 너무나 커서 엄마로서 따스함을 제공할 에너지마저 다 소모된 것이었다. 그 결과 매럴린 역시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자기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매럴린이 겪은 것과 같은 일들의 보편성을 인정하지 못하면, 울화가 활동할 무대장치를 마련하는 셈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의 느낌에만 정신을 집중한 나머지 고통의 편재성이라든가 고통의 발생 빈도 등을 전부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의 불공정함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상처의 뿌리가 내리고 울화가 형성된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용서-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