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화를 다스리기 어려웠던 삼십대 직장인이 조금 들뜬 얼굴로 이야기합니다. 몇 주전 그가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몇 권을 적어줬는데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과 흥분의 떨림이 전해져 옵니다.

“선생님이 권해주신 책을 읽고 마음이 되게 편했어요. 책 속에 나랑 비슷한 사례가 있더라구요. 내 안에 반복되는 감정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서 그 사람이 원하지도 않는 친절을 베풀고 나서 그걸 몰라주면 화가 치미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요. 이제 그 습관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 깨달은 마음을 잊어버리고 옛 날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까봐 두려워요.”

이런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깨달았다 해도 옛날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번의 깨달음으로 완전히 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이제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되었다고 마음을 놓을 정도로 훈습이 되었더라도, 언제든 다시 과거의 습관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오랜 습관은 칼로 무 베듯 깨끗하게 잘라낼 수 없습니다. 성장의 과정에서는 새로운 습관에 따라 행동하고 마음을 쓰다가도 과거의 습관이 발동되는 순간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 습관은 점점 옅어지고 새로운 습관이 점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갑니다. 즉 성장의 여정은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던 과거의 습관을 칼로 도려내듯이 없애 버린다기 보다는 그 세력이 점점 약해지도록 노력하는 것 입니다.

핵심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인 우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핵심 감정이 발동하려고 할 때마다 반복해서 깨달으면 핵심 감정의 영향을 덜 받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핵심 감정을 점점 더 빨리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날은 꽤 성숙하게 마음을 쓰다가도 어느 날은 그게 잘되지 않아 옛날 습관이 기세를 떨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또한 마음의 속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제는 없어진 줄 알았던, 완전히 극복해서 퇴치해 버린 줄 알았던 옛날 습관이 반복 된다고 해서 실망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감정의 성장은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시 과거의 습관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그 반복을 줄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습관이 재현되는 것이 훈습하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자신의 마음을 돌아다 보면 자신에 대한 이해는 더 깊고 단단해 질 수 있습니다.

성장은 어느 지점에 도달해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도달해야 할 단계가 명확히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 나아가야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입니다. 우리 모두 성장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각자 도달할 수 있는 성장의 지점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저마다 독특해서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보편성이라면, 그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개별성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길을 통해 정해진 성장의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된 나 자신으로서 나의 성장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핵심감정에 공감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 ‘감정의 성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