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아일랜드의 어머니들처럼 자식을 잃는 극단적인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과 용서 훈련을 하면서 이 ‘좋은 취재’를 사용해 보았다. 그들이 본래 원하던 것은 단란한 가정을 갖는 것 이었다. 그러므로 가족의 일원을 잃은 것은 그들에게는 인생을 황폐하게 하는 어마 어마한 손실이었다. 살아남은 가족은 그로 인해 여지없이 흔들렸고 가정의 응집력도 다 스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설사 이런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할지라도 그 때문에 자신의 좋은 취지를 언제까지고 비껴 지나갈 일은 아니다. 상처가 얼마나 깊었건 간에 치유를 위해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나를 과거에서 빼내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주는 이야기, 내 원래 목적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야기를 나는 과연 어떤 식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엄청난 상실에 맞닥뜨릴 때, 좋은 취지는 이러한 상실을 우리의 장기 목표에 연결시켜 고통을 상대화하게 해 준다. 삶이 우리에게 부과한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좋은 취지를 최대한 실현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그러자 원망의 넋두리는 무리 한가운데에서 쫓겨나, 원래 자기 자리인 구석으로 가서 웅크리고 있게 된다.
좋은 취지로 눈을 돌리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그런 모습을 보람을 느낀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자신의 참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때 비로소 풀린다.
앤디는 결혼 생활 내내 장인 장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모는 그에게 너무나도 불쾌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따뜻하고 이해심 있게 굴면서도 유독 그에게만은 차갑고 비판적이었다. 언젠가 자기가 병에 걸려 끙끙 앓고 있을 때 장모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앤디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의 청소 상태에 장모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 반면, 앤디는 그런 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장인 장모가 방문할 때 마다 앤디는 아내와 다투었다. 그리고 그 일로 너무 속을 썩이던 끝에 마침내 용서 세미나에 오게 되었다.
자신의 좋은 취지에 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앤디는 자기가 장모에 관해 딱히 이렇다할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장모가 좀 부드러워져 자기에게도 잘한다면 물론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이게 장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가끔 장모를 방문하는 것은 단지 아내를 위해, 다시 말해 아내가 친정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거들려는 생각일 뿐, 그 밖의 다른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앤디의 좋은 취지는 바로 아내를 상냥하고 사려 깊게 대하는 것이었다.
장모에 대해 화를 날 때마다 아내가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앤디는 차츰 눈치 챘다. 앤디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결혼 생활과 아내의 감정을 존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아내를 아프게 한다면 자기는 좋은 취지 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장모에 대해 원망 넋두리는 늘어놓을 때마다 그만큼 장모에게, 즉 자기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매이는 셈이었다. 이 사실을 자각하자 앤디는 그때까지의 원망 넋두리를 고쳐쓰기 시작했다. 새 이야기에는 아내에게 친절하고 싶은 그의 열망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이렇게 좋은 취지에 의거한 이야기를 만들자 그동안 장모가 그의 생각 속에서 차지했던 위력이 점차 쇠퇴해 갔다. 아내와의 관계가 좋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장모를 방문하기도 점차 편안해 졌고, 대할 때도 훨씬 부드러운 태도가 되었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용서-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중에서
나는 북아일랜드의 어머니들처럼 자식을 잃는 극단적인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과 용서 훈련을 하면서 이 ‘좋은 취재’를 사용해 보았다. 그들이 본래 원하던 것은 단란한 가정을 갖는 것 이었다. 그러므로 가족의 일원을 잃은 것은 그들에게는 인생을 황폐하게 하는 어마 어마한 손실이었다. 살아남은 가족은 그로 인해 여지없이 흔들렸고 가정의 응집력도 다 스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설사 이런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할지라도 그 때문에 자신의 좋은 취지를 언제까지고 비껴 지나갈 일은 아니다. 상처가 얼마나 깊었건 간에 치유를 위해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나를 과거에서 빼내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주는 이야기, 내 원래 목적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야기를 나는 과연 어떤 식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엄청난 상실에 맞닥뜨릴 때, 좋은 취지는 이러한 상실을 우리의 장기 목표에 연결시켜 고통을 상대화하게 해 준다. 삶이 우리에게 부과한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좋은 취지를 최대한 실현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그러자 원망의 넋두리는 무리 한가운데에서 쫓겨나, 원래 자기 자리인 구석으로 가서 웅크리고 있게 된다.
좋은 취지로 눈을 돌리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그런 모습을 보람을 느낀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자신의 참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때 비로소 풀린다.
앤디는 결혼 생활 내내 장인 장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모는 그에게 너무나도 불쾌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따뜻하고 이해심 있게 굴면서도 유독 그에게만은 차갑고 비판적이었다. 언젠가 자기가 병에 걸려 끙끙 앓고 있을 때 장모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앤디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의 청소 상태에 장모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 반면, 앤디는 그런 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장인 장모가 방문할 때 마다 앤디는 아내와 다투었다. 그리고 그 일로 너무 속을 썩이던 끝에 마침내 용서 세미나에 오게 되었다.
자신의 좋은 취지에 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앤디는 자기가 장모에 관해 딱히 이렇다할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장모가 좀 부드러워져 자기에게도 잘한다면 물론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이게 장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가끔 장모를 방문하는 것은 단지 아내를 위해, 다시 말해 아내가 친정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거들려는 생각일 뿐, 그 밖의 다른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앤디의 좋은 취지는 바로 아내를 상냥하고 사려 깊게 대하는 것이었다.
장모에 대해 화를 날 때마다 아내가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앤디는 차츰 눈치 챘다. 앤디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결혼 생활과 아내의 감정을 존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아내를 아프게 한다면 자기는 좋은 취지 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장모에 대해 원망 넋두리는 늘어놓을 때마다 그만큼 장모에게, 즉 자기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매이는 셈이었다. 이 사실을 자각하자 앤디는 그때까지의 원망 넋두리를 고쳐쓰기 시작했다. 새 이야기에는 아내에게 친절하고 싶은 그의 열망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이렇게 좋은 취지에 의거한 이야기를 만들자 그동안 장모가 그의 생각 속에서 차지했던 위력이 점차 쇠퇴해 갔다. 아내와의 관계가 좋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장모를 방문하기도 점차 편안해 졌고, 대할 때도 훨씬 부드러운 태도가 되었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용서-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