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표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평화로운 느낌을 갖는 것이다. 이 느낌은 당신이 울화에 치유되었을 때 찾아온다. 모욕감을 덜 느끼고, 자기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며. 신세 타령릉 성취담으로 바꿀 때 – 바로 이 때에 맛보는 평화로운 느낌을 나는 용서라고 부른다. 이런 평화로운 느낌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당신은 울화의 치유라는 목표 지점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으며, 용서를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한 용서의 정의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잇다.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신세타령이다. ‘내가 이렇게 당했다고’ 얘기가 흘러 간다면, 이는 벌써 우리가 그 일을 개인적으로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로 이한 심적 괴로움을 그일을 야기한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증거다. 같은 이야기라도 ‘내게 닥친 이런 부당한 일을 이러이러하게 극복했다’는 방향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로 남 탓을 하는 일은 당연히 적을 것이다. 그 일에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자기 감정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고 나는 제안하곤 한다. 정서적 체험에 관한 한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느낌은 과거의 책임이 아니다. 불쾌한 일이 과거에 일어났었다든가 앞으로 일어날 거라고 해서 반드시 현재가 날마다 파괴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자기를 상처입힌 사람에게 자기 느낌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너무 많이 주었다면, 당연히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다. 기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함으로써 남에게 주었던 그 힘을 도로 찾아오는 것 뿐이다.
감정에 대한 책임을 되찾는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첫 번째 기술은 실행하기도 쉬울 뿐더러 누구나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바로 우리 삶에 허락된 좋은 면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지금까지 원한과 울화, 상처의 아픔에 소비했던 시간을 우리 삶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발견하는 데 씀으로써 판단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 기술은 PERT룰 실천하는 것이다. ‘긍정적 기분을 되찾는 테크닉(Positive Emotion Refocusing Technique)’의 약자로, 우리가 당황하거나 화가 났을 때 또는 마음이 상했을 때 바로 고통을 즉시 줄여주는 기술이다.
자기감정을 스스로 책임지도록 돕는 이 두 가지 방법은 아주 중요하다. 당신을 편하게 해 주고, 지난 일 때문에 몇날 몇주 동안 시달리지 않도록 상처의 파괴력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의 책임을 떠맡는 다는 것이 과거에 자신이 겪은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책임이란 단지,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행동 사이의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용서란 과거에 일어난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혼란스럽거나 원한에 찬 상태에 계속 빠져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상처받은 것이야 과거 일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은 지금의 상태다. 용서와 울화는 지금의 체험이다.
당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라고 한다고 해서 과거의 일이 당신 책임이라고 밀어붙이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다. 사장의 기분이 저조한 것이 당신 탓이 아니며, 부모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당신이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당신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이후 당신 자신의 생각과 행동,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당신의 인생이다. 이 일들에 대한 반응과 감정은 모두 당신의 감정이자 반응이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 중에서
당신의 목표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평화로운 느낌을 갖는 것이다. 이 느낌은 당신이 울화에 치유되었을 때 찾아온다. 모욕감을 덜 느끼고, 자기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며. 신세 타령릉 성취담으로 바꿀 때 – 바로 이 때에 맛보는 평화로운 느낌을 나는 용서라고 부른다. 이런 평화로운 느낌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당신은 울화의 치유라는 목표 지점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으며, 용서를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한 용서의 정의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잇다.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신세타령이다. ‘내가 이렇게 당했다고’ 얘기가 흘러 간다면, 이는 벌써 우리가 그 일을 개인적으로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로 이한 심적 괴로움을 그일을 야기한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증거다. 같은 이야기라도 ‘내게 닥친 이런 부당한 일을 이러이러하게 극복했다’는 방향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로 남 탓을 하는 일은 당연히 적을 것이다. 그 일에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자기 감정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고 나는 제안하곤 한다. 정서적 체험에 관한 한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느낌은 과거의 책임이 아니다. 불쾌한 일이 과거에 일어났었다든가 앞으로 일어날 거라고 해서 반드시 현재가 날마다 파괴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자기를 상처입힌 사람에게 자기 느낌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너무 많이 주었다면, 당연히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다. 기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함으로써 남에게 주었던 그 힘을 도로 찾아오는 것 뿐이다.
감정에 대한 책임을 되찾는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첫 번째 기술은 실행하기도 쉬울 뿐더러 누구나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바로 우리 삶에 허락된 좋은 면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지금까지 원한과 울화, 상처의 아픔에 소비했던 시간을 우리 삶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발견하는 데 씀으로써 판단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 기술은 PERT룰 실천하는 것이다. ‘긍정적 기분을 되찾는 테크닉(Positive Emotion Refocusing Technique)’의 약자로, 우리가 당황하거나 화가 났을 때 또는 마음이 상했을 때 바로 고통을 즉시 줄여주는 기술이다.
자기감정을 스스로 책임지도록 돕는 이 두 가지 방법은 아주 중요하다. 당신을 편하게 해 주고, 지난 일 때문에 몇날 몇주 동안 시달리지 않도록 상처의 파괴력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의 책임을 떠맡는 다는 것이 과거에 자신이 겪은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책임이란 단지,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행동 사이의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용서란 과거에 일어난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혼란스럽거나 원한에 찬 상태에 계속 빠져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상처받은 것이야 과거 일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은 지금의 상태다. 용서와 울화는 지금의 체험이다.
당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라고 한다고 해서 과거의 일이 당신 책임이라고 밀어붙이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다. 사장의 기분이 저조한 것이 당신 탓이 아니며, 부모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당신이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당신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이후 당신 자신의 생각과 행동,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당신의 인생이다. 이 일들에 대한 반응과 감정은 모두 당신의 감정이자 반응이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