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에 그 고약한 느낌의 원인을 과거의 상처에서 구하곤 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대가 처음부터 상처를 입힐 목적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과거에 겪었던 잔혹함을 지금의 내 느낌과 인과 관계로 연결 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상처의 치유를 더욱 어렵게만 할 뿐이다.어떤 행동 이나 느낌의 이유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저 사람이 내게 상처를 낼 의도로 그랬다는 말이 되는 건 아님을 기억하라. 여기서 가장 어려운 점은, 설사 우리가 어떤 느낌의 원인을 밝혀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니 우리에겐 현재 시점에서 사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동기를 유발하고 그럼으로써 상처의 치유에 도움을 주는 가설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탓 돌리기와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이다. 우리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우리는 과거에 잡혀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고통을 연장한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그만큼 우리가 치유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불행하게도 우리는 잘 모를 때가 많다.
당신에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가설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 책을 쓴 몇 가지 목적 가운데 하나다. 탓 돌리기는 우리가 아파하는 이유를 납득하게 위해 만들어 본 하나의 가설에 불과함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이미 치유의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탓 돌리기는 상처를 설명하는 가설 중 최악의 가설이다. 우리가 이 가설을 바꾸지 않는 한 이 탓 돌리기가 우리를 끊임없이 상처 입힐 것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다. 탓돌리기 게임을 하면 처음에는 기분이 좀 나아진 양 착각하게 된다. 당신이 느끼는 상처가 남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잠시나마 당신을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좋은 느낌은 희미해 지고, 대신 당신은 상처만 쉽게 받고 대책 없는 사람으로 혼자 남게 된다. 궁극적으로 상태를 호전시키는 첫걸음은 결국 당신이 직접 내디뎌야 한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한 아내가 있다면, 고통의 책임을 헤어진 남편에게 미루는 대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내 고통을 덜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내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 돌린다면, 상태가 호전되려면 바로 그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외도한 남편이 사죄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개과천선 하든가 아니면 용서를 빌기라도 해야 그가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것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남편 탓만 하고 있는 한, 남편의 배신을 극복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헤어진 남편이 자기 고통에 반드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에게는 남편을 움직일 만한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이제 남편에게서 거부 받고 버림받은 일에 무력감과 원한으로 대응하게 된 것이다. 남편에게 탓을 돌림으로써 아내는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 논 셈이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사건의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 가장 그럴싸한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무엇이 원인인지를 정확히 알기란 어렵고, 왜 이렇게 내가 상처를 받았는지를 확실히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덜 상처받기를 배우는 일 뿐이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용서-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 중에서
우리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에 그 고약한 느낌의 원인을 과거의 상처에서 구하곤 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대가 처음부터 상처를 입힐 목적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과거에 겪었던 잔혹함을 지금의 내 느낌과 인과 관계로 연결 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상처의 치유를 더욱 어렵게만 할 뿐이다.어떤 행동 이나 느낌의 이유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저 사람이 내게 상처를 낼 의도로 그랬다는 말이 되는 건 아님을 기억하라. 여기서 가장 어려운 점은, 설사 우리가 어떤 느낌의 원인을 밝혀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니 우리에겐 현재 시점에서 사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동기를 유발하고 그럼으로써 상처의 치유에 도움을 주는 가설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탓 돌리기와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이다. 우리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우리는 과거에 잡혀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고통을 연장한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그만큼 우리가 치유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불행하게도 우리는 잘 모를 때가 많다.
당신에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가설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 책을 쓴 몇 가지 목적 가운데 하나다. 탓 돌리기는 우리가 아파하는 이유를 납득하게 위해 만들어 본 하나의 가설에 불과함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이미 치유의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탓 돌리기는 상처를 설명하는 가설 중 최악의 가설이다. 우리가 이 가설을 바꾸지 않는 한 이 탓 돌리기가 우리를 끊임없이 상처 입힐 것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다. 탓돌리기 게임을 하면 처음에는 기분이 좀 나아진 양 착각하게 된다. 당신이 느끼는 상처가 남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잠시나마 당신을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좋은 느낌은 희미해 지고, 대신 당신은 상처만 쉽게 받고 대책 없는 사람으로 혼자 남게 된다. 궁극적으로 상태를 호전시키는 첫걸음은 결국 당신이 직접 내디뎌야 한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한 아내가 있다면, 고통의 책임을 헤어진 남편에게 미루는 대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내 고통을 덜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내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 돌린다면, 상태가 호전되려면 바로 그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외도한 남편이 사죄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개과천선 하든가 아니면 용서를 빌기라도 해야 그가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것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남편 탓만 하고 있는 한, 남편의 배신을 극복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헤어진 남편이 자기 고통에 반드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에게는 남편을 움직일 만한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이제 남편에게서 거부 받고 버림받은 일에 무력감과 원한으로 대응하게 된 것이다. 남편에게 탓을 돌림으로써 아내는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 논 셈이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사건의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 가장 그럴싸한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무엇이 원인인지를 정확히 알기란 어렵고, 왜 이렇게 내가 상처를 받았는지를 확실히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덜 상처받기를 배우는 일 뿐이다.
‘나를 위한 선택 용서 용서- 용서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원하는가?’ 중에서